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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주의 문학과 미술 사이

‘호모 에피쿠로스’ 쾌락적 인간

문학과 미술사이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와 헤에로니무스 보슈의 ‘쾌락의 정원’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와 <뇌>의 최후비밀

 

인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세상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행복’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행복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 아닐까? 즉 행복하다는 것은 지금 내 몸 속에 엔도르핀이 생겨 삶이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현재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는 인간이 행동하는 궁극적 동기에 대해 질문한다. 삶의 본질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쾌락이라는 주장, 즉 고대 그리스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이 소설 전반에 걸친 철학적 배경이다.


소설은 두 개의 구조로 펼쳐지는데, 하나는 소설의 두 주인공 신경정신과 의사 사뮈엘 핀처와 평범했던 은행원이었다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루이 마르탱과의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들은 ‘뇌’와 ‘컴퓨터’의 결합을 실험하고, 나아가 뇌에 숨겨진 ‘최후비밀’에 대한 지식을 탐색한다. 다른 하나는 핀처가 체스세계선수권대회에서 컴퓨터 딥블루 IV와 대결하여 승리한 후, 자신의 애인 나타샤 안데르센과의 정사 중에 사망한 것을 복상사로 보지 않고 타살로 의심하는 과학전문 기자인 이지도르와, 그와 생각은 다르지만 수사에 합류하는 여기자 뤼크레스의 모험이야기이다. 핀처의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위협을 당하기도 하는 이 두 남녀의 모험을 통해, 독자는 이들이 계속해서 질문하는 ‘우리의 행동의 동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리스(LIS) 환자(자기 안에 감금된 듯한 상태Locked-In Syndrome)가 된 마르탱은 신경 체계가 마비되어 눈 깜박임만을 하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지만, 자신의 담당 의사인 핀처의 도움으로 컴퓨터와 접속함으로써 사회와 자신을 연결시키고자 한다. 급기야 마르탱은 핀처를 통해 자신의 뇌에 전극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는데, 뉴런과 전극이 연결된 즉 유기체와 전자물질의 융합에 성공한다.


이제 마르탱은 컴퓨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생각만으로도 커서를 움직이며 살아있는 컴퓨터가 된다. 마르탱에게 핀처는 윤리적인 인간의 가치들과 구약성서, 신약성서, 도덕경,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등 지구의 모든 지혜를 갖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설계해준다. 마르탱과 핀처는 인간 뇌의 ‘최후비밀’까지도 탐험하게 되는데, 이는 195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실험의 연장으로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쾌감을 자극하는 것으로, 이 부위가 활성화되면 인간은 새로운 감각과 완벽한 지능까지 발휘하게 된다.


마침내 그들은 생쥐의 뇌 실험을 통해 뇌의 어느 부위에 있는 그 비밀의 장소를 알아낸다. 핀처는 자신의 뇌에도 전극을 이식하고, 머리에 안테나를 심고 마르탱으로부터 주파수를 받는 식으로, 뇌의 ‘최후비밀’ 실험을 진행시킨다. 그런데 ‘최후비밀’의 실험은 허망하게 끝난다. 핀처는 마르탱이 딥 블루 IV를 이긴 기념으로 보낸 전기 자극을 받았지만 과도한 자극으로 인해 희열을 느끼다 결국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의 뇌는 정말 그토록 즐거움을 원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매일 일어나는 감정들 중, 즐거움의 반대편에 놓인 것들, 즉 슬픔, 외로움, 무기력함, 건망증, 열등감, 부끄러움, 증오, 질투 등 이러한 감정들은 분명 고통이 수반된다. 그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 속 두 과학기자들이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정리한 목록들은 다음과 같다. 1.고통을 멎게 하는 것, 2.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3.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4.안락함을 위한 부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5.의무감, 6.분노, 7.성애, 8.습관성 물질, 9.개인적인 열정, 10.종교, 11.모험. 12.최후비밀에 대한 약속, 13.최후비밀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


이 모든 동기가 향하는 것은 결국 쾌락에의 추구인가? 에피쿠로스학파에게 있어, 진정한 쾌락은 방탕이나 환락을 즐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마음의 평정’ 즉 아타락시아(ataraxia)와 절제에 있다. “부귀영화가 아닌 박애, 산해진미가 아닌 소박한 음식, 색욕보다는 우정”과 같이 세상의 쾌락과 오히려 동떨어져 있는 마음의 고요, 평정심이 진정한 쾌가 된다.


소설 속 현세의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감각적 자극의 쾌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핀처가 경험하는 ‘최후비밀’은 무엇인가? 베르베르는 그것이 육체적 감각이 아니라 오감을 초월해 마치 우주의 블랙홀과 진동마저 섬세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좌뇌와 우뇌가 하나로 결합되는 경지”를 선사하는 그 최후비밀을 인류가 가져야 할 것처럼 말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진정 인간이 향해야 할 쾌락은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쾌락은 에피쿠로스가 말한 것처럼, 다만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닐까? 뇌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보다, 소설의 말미에서처럼 두 남녀 기자가 서로 사랑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야말로 삶을 이끄는 어떤 동기보다도 가장 강력하지 않은가.


쾌락은 죄인가 -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

 


중세에는 쾌락 자체를 타락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퍼져있었다. 이러한 중세의 관념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 독창적으로 표현한 15세기의 화가가 있다. 바로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네덜란드, 1450-1516)인데, 그는 난해하기로도 유명하면서 또한 가장 많이 연구되는 작품 <쾌락의 정원>의 작가이다.


3개의 패널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아래에서 위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왼쪽의 패널은 에덴동산을 배경으로 붉은 옷을 입은 그리스도가 아담과 이브의 결혼을 축복한다. 그런데, 기린과 코끼리 등 동물들이 인간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동산에서 은밀한 죄의 상징이 존재한다. 바로 성적 타락을 의미하는 올빼미가 그것이며 곧 낙원에 불어 닥칠 불길한 예감을 나타낸다.


중앙의 패널은 인간의 쾌락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정원이다. 옷을 벗고 다니는 젊은 남녀들은 어미새(악마)가 주는 과일을 받아먹으려는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있거나, 과일에 목매듯 매달리는 사람들은 마치 정욕에 굶주린 듯 탐욕스럽다. 한편 꽃을 꺾어 들고 춤을 추는 이인조의 머리 위에 있는 올빼미는 사탄처럼 보인다. 그림 뒤편의 기괴한 건축물은 꽃처럼 아름다운 형상이지만 가시가 돋은 가지가 그 건물을 관통한다. 마치 아름다운 꽃 속에 가시 혹은 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주듯, 쾌락에는 늘 함정이 있을 법하다.


오른쪽 패널은 쾌락적 인간들에게 저주를 쏟아 붓는 지옥의 현장이다. 새의 모습을 한 악마가 죄인들을 집어삼키고, 죄인들의 항문에서 마치 영혼이 빠져나오듯 밖으로 나온 검은 새들이 날아오른다. 삼켜진 죄인들은 소화되지도 않은 채 그대로 배설물이 되어 오물 구덩이에 처박히는데, 그 오물 구덩이 입구에 대고 금화를 엉덩이에서 배설하거나, 먹은 것을 토해내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들은 필시 성경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이거나 식탐이 많았던 죄인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옥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은 음악가들에 대한 응징인데, 경건한 음악이 아닌 오로지 말초적 음악에 봉사한 사람들이 당하는 벌이다. 하프에 몸이 꿰인 사람, 악마가 두들기는 북 속에 갇힌 사람, 피리로 똥침을 맞는 사람 등, 상당히 새디스트적인 분위기이지만 상상력이 탁월한 보쉬의 묘사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 지옥도에는 실제 작가 본인의 얼굴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온다. 바로 하반신이 날아가고 두 팔을 보트에 의지한 채 뒤를 돌아보는 남자의 얼굴이다. 이 남자의 몸통 안에 술통을 굴리는 마녀와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마도 젊은 시절 쾌락에 젖어 시간을 보낸 보쉬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쉬의 그림에서, 베르베르의 소설에 나오는 현세적 쾌락주의자들이 지옥의 인간들과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일까? 보쉬 자신은 에피쿠로스적인 쾌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적정한 쾌락은 무엇일까 보쉬를 만난다면 물어보고 싶다.


배상민 플로리스트, 크리스마스 플라워 데코 전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향기로운 꽃향기에 취할 수 있는 곳. 배상민(쉐리벨 대표) 플로리스트가 오는 21일부터 15일까지 세종포스트빌딩 5층 청암아트홀에서 ‘크리스마스 플라워 데코레이션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는 세종에서 여는 첫 전시로 총 14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주제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따뜻한 연말'로 작품은 대부분 생화 위주로 구성, 프리저브드 작품도 함께 선보일 계획이다. 배상민 플로리스트는 현재 세종시 어진동에서 ‘쉐리벨 플라워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청주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올해 세종시지방경기대회 화훼장식부문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2015년 ‘제15회 코리안컵플라워 경기대회’에 개인 출전, 본선 6위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그는 쉐리벨에서 플로리스트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플로리스트 학생·취미·전문가반을 모집, 교육하면서 전문가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배상민 플로리스트는 “세종시에 아직 꽃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시민들이 꽃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앞으로 세종시 하면 ‘꽃과 어우러진 도시’라는 타이틀이 떠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 오픈식은 전시